Photo: Forsvarsmuseets billedarkiv.Photo: Forsvarsmuseets billedarkiv

노르웨이 육군이동외과병원(NORMASH)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남한에 대한 회원국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등 재빠르게 조치하였습니다. 노르웨이는 유엔의 결정을 지지하였고 남한을 지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현실적인 도움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노르웨이 적십자사는 노르웨이 외교부의 요청에 따라 한국의 민간인, 특히 늘어나는 난민을 돕는 데 대한 제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에 파병된 유엔군을 위한 이동외과병원에 대한 요구 또한 시급하였습니다. 따라서 노르웨이 적십자사는 야전병원을 운영하는 방안을 준비하였습니다. 1951년 3월 2일 노르웨이 의회는 이 방안을 통과시켰고, 한 달 후에 이에 필요한 자금이 조달되었습니다. 노르웨이는 한국에 파병된 유엔군에게 절실하게 필요하였던 이동병원을 제공 및 운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병원이 운영되기 전에 몇 가지 합의해야 할 사안들이 있었습니다. 주요 동맹국들의 협력이 필요하였습니다. 몇 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노르웨이는 미국으로부터 야전병원을 구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1951년 5월 16일 1차 대원들이 한반도로 출발하였습니다. 노르웨이 적십자사는 외교부를 대신하여 병원의 관리에 대한 책임을 맡았고, 이 담당은 1951년 말 국방부로 넘어갔습니다.

  

 

 

 

병원 운영

 

병원 장비는 1951 6월과 노르웨이 육군이동외과병원(NORMASH: Norwegian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공식적으로 개원한 같은 7 19일에 지급되었습니다. NORMASH 다른 참전자들과 같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미군 8군사령부 직할대로 편성되었습니다. 병원은 군사령부로부터 직접 지시를 하달 받았습니다. 노르웨이 야전병원의 임무는 부상병들에게 신속한 시술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은 처음에 서부 전선이자 서울 북부에 위치하고 전방에서 남으로 14.4킬로미터 떨어진 의정부에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차례에 걸쳐 이전되었고, 마지막 이전은 1952 7 동두천에 이루어졌습니다. 그곳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 남북한 경계선이었던 38선이 바로 위치하였던 곳이었습니다.

 

 

NORMASH에는 누가 근무하였는가?

 

623명의 노르웨이인이 NORMASH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191명이었고, 329명은 장교와 병사들이었습니다. 의료지원부대는 2개월에 번씩 교대하였고, 지금까지 7 부대가 남한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노르웨이인 외에도 40 ~ 60명의 한국 민간인과 일부 미국인들이 근무하였습니다. NORMASH 민간인, 병사, 적군, 아군 다양한 환자들을 치료하였고, 이를 운영하였던 3년의 기간 동안 9 명의 환자들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의료지원부대는 이곳에 부상자들 98% 목숨을 살렸고, 중에 80% NORMASH에서 치료를 받은 다시 임무 수행을 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병원을 개원한 2 정도가 지난 1953 7 27, 휴전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NORMASH 다른 유엔군과 마찬가지로 상황이 확실해질 때까지 행동을 계속 하였습니다. 이로부터 1 후에 유엔군이 철수하자 NORMASH 문을 닫았습니다. 공식적인 폐원일은 1954 11 10일입니다.

 

어려웠던 시기의 노르웨이인들은 한국인과 노르웨이인 사이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였고, 나아가 양국 간의 우호와 협력으로 이어졌습니다.

 

 

동두천 노르웨이참전비

 

한·노르웨이친선협회는 1972 3 30 동두천시에 NORMASH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습니다. 야전병원이 운영되었던 3 2년을 동두천시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동두천시에 세울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NORMASH 근무하였던 한국인들이 선물이며, 분이 비석을 제작하였습니다. 비석에는 비문과 노르웨이 국기가 새겨져 있습니다.

 

비석은 2000년에 새롭게 개관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외부로 옮겨졌습니다. 2002 5월에 개관한 박물관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 소속 하에 참전하였던 모든 국가들의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구역은 노르웨이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박물관 관리 측은 전쟁 당시 사용되었던 물품과 NORMASH 이전 위치에서 수집한 물품들을 전시 중입니다.

  

  

노르웨이 재향군인회

 

전쟁은 끝나고 노르웨이 육군이동외과병원(NORMASH: NORwegian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 이상 운영하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근무하였던 인원들은 한국에 아직 남아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직시하였습니다. 그들은 특히 고아가 어린이들의 행렬에 대해 손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심을 바탕으로 '노르웨이한국재단(Norsk Korea Forening)'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였습니다. 재단은 노르웨이의 원조가 전쟁으로 고통 받은 한국 지역사회에 전달될 있는 경로였고, 이후 한국 어린이 입양에 관여하였습니다. 따라서 NORMASH 문을 닫고, 휴전으로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일부 재향 군인들은 다른 노르웨이인들과 함께 한국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NORMASH에서 근무하였던 인원들도 재향군인회를 조직하였고,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단체입니다. 일부 재향군인들은 전쟁 후에 한국을 다시 찾아 전쟁이 일어났던 지역을 돌아보고 한국인들과 만날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다시 찾을 기회를 가졌던 재향군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번영에 대해 기쁨을 표현하였고, 한국인들이 보여 따뜻한 환영에 감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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