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09-08-12
매일 사용하는 도구와 장비에 미적 요소를 담았던 시도는 발굴된 고대 유물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오스베르그(Osberg)의 발견에서는 전문가 수준의 섬유와 목각 새김이 나왔는데, 재능 있는 장인들의 작품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중세 노르웨이 교회의 내부 장식과 가구들 또한 대단한 장인정신을 보여 줍니다. 설교단의 조각, 은과 동으로 된 의식용 도구, 발디스홀(Baldishol, 작가 미상) 양탄자와 같이 교회 안의 아름답게 짜인 섬유 등은 그러한 장인정신을 잘 보여 주는 예들입니다.
장미 페인팅은 노르웨이만의 독특한 장식 페인팅 기법이며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장미를 주요 패턴으로 삼았습니다. 과거 농촌에서 인기 많았던 기법이지만 지금은 고전적인 노르웨이 민속예술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16세기에는 노르웨이의 금 세공인들이 자기가 만든 제품에 날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부터 완성품에는 항상 그것을 만든 장인의 이름이 나타났습니다.
르네상스 때 유행했던 전통 중 하나는 pictorial weaving으로 구드브란스달렌(Gudbrandsdalen)이라는 지역에서 자리잡은 여성 활동입니다. 17세기 초에는 오븐에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장식을 새겨 넣는 등 철공예가 노르웨이 수공업의 근원을 정의하였습니다.
시골에서는 목각과 장미 페인팅 전통이 19세기 중반까지 이어졌습니다. 1814년 독립은 수공업 분야에 많은 새로운 기회들을 약속하였지만 이후 몇 십 년 동안 발생한 빈곤으로 인해 개발이 늦어졌습니다. 19세기 후반까지는 노르웨이 수공업이 고대 전통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지만 신기술들이 점점 생산 과정에 소개되었습니다. 1852년에 설립한 하데란드 글라스베르크(Hadeland Glassverk)는 높은 수준의 외래 기술을 도입해 일반 유리보다 정제된 유리를 생산하였습니다. 에게르순 파이앙스 인더스트리(Egersund Faiance Industry)는 영국식 돌 세공을 소개하였고, 1887년에는 포르스그룬(Porsgrunn) 도자기 회사가 개업하였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수공업의 미적 가치가 점점 높이 평가되어 간다는 것을 목격하였고, 세기의 전환기에는 여러 대도시에서 대규모 국제 수공예품 전시회가 수없이 열렸습니다. 이러한 발전의 중심에는 금 세공인들이 작업보다 자기가 만든 수공예품의 디자인적인 측면에 신경 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유겐트 시대에 노르웨이 수공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고대 바이킹들이 사용했던 수오리나 용머리 기장에 대한 르네상스가 일어나 다양한 수공예품에 나타나고 국제적인 관심과 하나의 국가적인 상징으로 발전하였습니다.
1930년대 기능주의 디자인은 스칸디나비아 수공예품 제작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1950년대가 되어서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이라 불리는 독창적이고, 좀 더 부드럽고 인간적인 형식으로 발돋움하였습니다.
1970년대의 경제성장은 수공업에 대변혁을 일으켰습니다. 섬유, 유리 공예, 도자기 등은 완전한 시각 예술로서 인정 받았고, 제품의 용도는 더 이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1974년 장인들은 노르웨이 수공예 예술가(Norske kunsthåndverkere)라는 협회를 통해 국가소득보장계획(State Guaranteed Income Scheme) 대상으로 고려되었고, 노르웨이 예술가들로부터 인정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1980년대에는 공업 디자인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공공 장소와 건물을 장식하는 데 고용된 장인들이 늘었습니다. 또한 1994년 릴레함메르(Lillehammer) 동계올림픽에서 예술적 표현을 하는 데 있어 공예와 디자인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출처: 위 내용은 노르웨이 예술 디렉토리에서 비지팅 아트(Visiting Arts)의 승인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ISBN 19020349164 © 1999). 전자우편: information@visitingarts.org.uk